한국 프로야구 팬들에게 프로야구 등번호 영구결번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선 전설의 상징입니다. 1986년 KBO 리그 최초의 영구결번인 김영신 선수부터 최근의 이대호 선수까지, 역대 영결번 선수들의 명단과 그들이 등번호에 담았던 특별한 사연을 상세히 알아봅니다. 또한 메이저리그 루 게릭으로부터 시작된 영구결번의 유래와 선정한 기준, 그리고 등번호를 둘러싼 선수들 간의 훈훈한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풍성하게 담았으니 확인해 보세요.

 

야구선수에게 등번호란 무엇인가?

야구장에서 선수의 뒷모습을 가장 먼저 설명해 주는 것은 바로 '등번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식별 번호일지 모르지만,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등번호는 자신의 분신이자 자부심 그 자체입니다. 때로는 선배의 번호를 물려받으며 의지를 다지기도 하고, 성적이 부진할 때 분위기 쇄신을 위해 번호를 바꾸기도 합니다.

 

이러한 등번호 중에서도 가장 높은 명예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영구결번(Retired Number)'입니다. 특정 선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 선수가 은퇴한 후 해당 번호를 팀 내에서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게 봉인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한국 프로야구(KBO)의 등번호 유래와 영구결번의 역사를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1. 등번호의 유래와 의미

야구선수에게 처음 등번호가 부여된 것은 1929년 뉴욕 양키스 시절입니다. 재미있게도 당시 등번호는 '타순'을 의미했습니다. 1번 타자는 1번, 2번 타자는 2번을 다는 식이었습니다. 이후 수비 포지션별로 번호를 부여하기도 했는데, 투수는 1번, 포수는 2번, 1루수는 3번 등으로 매겨 통계 관리의 편의를 도모했습니다. 주전 외 선수들은 보통 10번 이후의 번호를 받았습니다.

 

오늘날에는 선수 개개인의 개성과 신념이 담깁니다.

 

이름에서 따온 번호 : 장원삼 선수는 이름의 원(1)과 삼(3)을 합쳐 13번을, 공필성 선수는 '공'의 발음을 따 0번을 사용했습니다.

 

우상에 대한 존경 : '야구 천재' 이종범, '국민 유격수' 박진만 등 기라성 같은 유격수들은 대선배 김재박의 7번을 동경해 같은 번호를 달았습니다.

 

특별한 사연 : 이승엽 선수는 일본 진출 후 부진을 겪다 2006년 WBC 시절의 기세를 이어가고자 25번으로 번호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2. 영구결번의 시작 : 루 게릭과 김영신

영구결번의 효시는 메이저리그의 전설 루 게릭입니다. 1923년 데뷔 후 1939년 은퇴하기까지 뉴욕 양키스의 상징이었던 그의 4번이 세계 최초로 영구결번되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의 시작은 조금 더 숙연합니다. 1986년,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한 OB 베어스(현 두산)의 포수 김영신의 54번이 최초입니다. 구단은 선수 관리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그를 기리기 위해 결번을 결정했습니다. 이후의 영구결번은 선수의 뛰어난 성적과 공로를 예우하는 명예로운 훈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3. KBO 리 역대 영구결번 명단 (18인)

현재까지 KBO 리그에서는 총 18명의 번호가 영구히 보존되고 있습니다.

구단 선수명(번호) 지정 연도
두산 김영신(54), 박철순(21) 1986, 2002
LG 김용수(41), 이병규(9), 박용택(33) 1999, 2017, 2022
KIA 선동렬(18), 이종범(7) 1996, 2012
삼성 이만수(22), 양준형(10), 이승엽(36), 오승환(21) 2004, 2010, 2017, 2025
한화 장종훈(35), 정민철(23), 송진우(21), 김태균(52) 2005, 2009, 2009, 2021
롯데 최동원(11), 이대호(10) 2011, 2022
SSG 박경완(26) 2014

 

참고 : 키움 히어로즈, NC 다이노스, KT 위즈는 아직 영구결번 사례가 없습니다.

 

[ 특별한 기록 : 부산의 자부심, 하지만 아픈 이름 '최동원' ]

18명의 영구결번 중 많은 팬들도 그렇겠지만 저의 마음을 가장 먹먹하게 만드는 번호는 단연 롯데 자이언츠의 11번, 최동원입니다. 그는 부산이 낳은 불세출의 슈퍼스타였고,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거두며 구단 최초의 우승을 이끈 전설입니다. 하지만 그 영광의 끝은 영구결번의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선수 협외 결성 등 구단과의 갈등 과정에서 그는 쫓겨나듯 타 팀으로 트레이드되었고, 은퇴식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쓸쓸히 마운드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의 등번호 11번은 주인을 잃은 채 한동안 후배 선수들의 등에 달렸습니다.

 

안타깝게도 구단은 그가 2011년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예우에 소홀했습니다. 결국 그가 별세한 후에야 쏟아지는 팬들의 비난과 염원에 떠밀려 영구결번을 지정하게 된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다하다고 하지만 "필요할 때는 영웅으로 초대하고, 쓸모없어지면 매몰차게 되돌아버리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항상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팀을 갈아타고 싶을 만큼 서운함이 밀려올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사직 야구장 전광판 아래 선명히 빛나는 '11번'을 볼 때면 저 포함 팬들 모두 혼잣말을 건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우리 팀 좀 잘 되게 하늘에서 도와주세요."라고 말이죠. 

 

이처럼 영구결번은 화려한 기록 뒤에 숨겨진 선수의 희생과 구단 간의 복잡한 서사가 담겨 있기도 합니다.

 

롯데 자이언츠 최동원 영구결번 11번 사직구장 게시 모습
사직야구장 내에 게시된 고(故) 최동원 선수의 영구결번 11번. 팬들에게는 미안함과 그리움이 교차하는 상징적인 번호입니다.

4.영구결번이 되기 위한 조건 : '원클럽맨'이 필수일까?

보통 영구결번은 한 팀에서 오래 활약한 '원클럽맨'이 유리합니다. 하지만 팀 기여도가 절대적으로 높다면 팀을 옮긴 경우라도 가능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박경완 선수입니다. 그는 쌍방울 레이더스와 현대 유니콘스를 거쳐 SK 와이번스(현 SSG)로 이적했지만, 세 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영구결번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양준혁 선수와 최동원 선수 역시 팀을 옮긴 사례가 있지만, 해당 구단에서의 압도적인 위상 덕분에 전설로 남았습니다.

마무리 : 다음 영구결번의 주인공은?

영구결번은 단순히 야구를 잘하는 것을 넘어, 한 시대의 아이콘이자 팬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준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명예입니다. 현재 활약 중인 선수 중에는 SSG의 최정과 김광현, KIA의 양현종 등이 미래의 영구결번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선수들의 땀방울이 서린 등번호가 경기장 벽면에 영구히 새겨지는 날, 팬들은 그들의 플레이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응원하는 팀의 다음 영구결번 주인공은 누구로 예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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